시장 골목을 걷다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곳이 있었습니다. 커다란 북과 꽹과리가 울리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흥겨운 소리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그때 들려온 노래가 바로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로 시작하는 노래였습니다. 처음에는 장난스러운 노래인가 싶었지만, 가만히 듣다 보니 배고픔과 가난, 그리고 그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이 담겨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이 노래, ‘각설이 타령’, 또는 ‘품바 타령’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전해져 왔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각설이 타령은 조선시대부터 장터나 마을 잔치에서 부르던 노래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각설이’는 떠돌며 구걸을 하던 걸인이나 광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다만 오늘날에는 이 표현이 사람을 낮춰 부르는 말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공연에서는 주로 ‘품바’라는 이름을 더 많이 씁니다. 품바는 ‘북을 치며 노래하고 재담을 하는 광대’ 정도의 의미로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구걸만 한 것이 아니라, 노래와 춤, 재담으로 사람들을 웃게 하며 약간의 돈이나 음식을 얻었던 거리의 예능인이기도 했습니다.
각설이 타령은 왜 ‘원곡’이 없을까요?
요즘 유행가처럼 누가, 언제, 어떤 제목으로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노래를 생각해 보면, 각설이 타령은 조금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 노래는 처음부터 악보로 기록된 노래가 아니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조금씩 변해온 노래입니다. 이런 방식을 ‘구전’이라고 부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품바 공연자들이 자기 경험, 자기 개성에 맞게 가사를 바꾸고, 장단을 늘이거나 줄이며 부르다 보니, 정해진 하나의 ‘원곡’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대신, 사람들이 가장 익숙하게 기억하는 몇 줄의 가사와 후렴, 장단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지역마다, 공연자마다 가사가 다르고, 심지어 같은 공연자도 관객 반응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게 부르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가사 내용 살펴보기
각설이 타령의 가사는 버전이 매우 많지만, 여러 형태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핵심 이야기는 비슷합니다. 대표적인 흐름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자신을 소개하고, 다시 돌아왔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예: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 배고픔과 가난한 처지를 솔직하게 말합니다.
예: 한 푼 줍쇼 엽전 한 푼 동전 한 닢 줍쇼 - 여러 고장을 떠돌아다닌 이야기, 남의 잔치에 가 본 이야기 등이 등장합니다.
- 마지막에는 돈이나 밥도 좋지만, 결국 사람 사이의 정이 더 중요하다는 말로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듭니다.
이때 중간중간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다”, “덩기덕 쿵더러러러” 같은 추임새가 들어가 노래의 흥을 돋웁니다. 추임새는 정해진 답안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부르는 사람이 상황에 맞게 바꾸어 넣을 수 있습니다. 관객이 함께 따라 부르면서 공연이 더 신나게 이어지기도 합니다.
가사에 담긴 삶의 모습과 감정
각설이 타령을 자세히 들어보면 단순히 웃기기 위한 노래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능청스럽고 장난스러운 말투지만, 그 속에는 여러 감정이 섞여 있습니다.
- 가난과 배고픔: “동냥 한 푼”, “쌀이라도 주시구려” 같은 표현은 당시 서민들이 얼마나 어려운 생활을 했는지 보여줍니다.
- 자기비하와 해학: 스스로를 초라한 사람처럼 묘사하면서도, 그 모습을 웃음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이렇게 자신을 살짝 낮추면서 웃음을 끌어내는 방식을 ‘해학’이라고 합니다.
- 여행과 떠돌이 삶: 팔도강산을 떠돌며 여기저기 다닌 이야기는 안정된 집 없이 돌아다니던 각설이의 삶을 드러냅니다.
- 정에 대한 갈망: 마지막에 “정이 제일 좋구려”라고 말하는 부분은 결국 사람이 사람에게 베푸는 따뜻한 마음이 가장 소중하다고 말하는 부분입니다.
이처럼 각설이 타령은 웃음과 눈물이 함께 들어 있는 노래입니다. 힘든 현실을 그대로 노래하면 너무 슬퍼지기 마련인데, 이 노래는 그 슬픔을 농담과 재치로 감싸서, 듣는 사람과 부르는 사람 모두가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함께 웃을 수 있게 만듭니다.
품바 공연에서의 각설이 타령
오늘날 우리가 보는 품바 공연은 단순히 노래만 부르는 공연이 아닙니다. 화려한 옷차림, 과장된 분장, 큰북과 꽹과리 같은 악기,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재담이 어우러져 하나의 큰 놀이판을 만듭니다. 이때 각설이 타령은 공연의 중심이 되는 노래 역할을 합니다.
공연자는 노래 중간에 관객에게 말을 걸며 상황을 즉석에서 만들어 갑니다. 예를 들어, 관객 중 한 사람을 가리키며 즉흥적으로 그 사람을 칭찬하거나 살짝 놀리는 가사를 지어 부르기도 합니다. 이런 즉흥성 때문에, 같은 ‘각설이 타령’이라도 매번 새로운 공연처럼 느껴집니다.
또한, 옛날에는 가난한 사람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던 노래였다면, 오늘날에는 그 의미가 조금 넓어졌습니다. 지금 공연에서는 옛날식 말투와 옷차림을 이용해 웃음을 만들면서도, 때로는 요즘 사회 문제를 살짝 풍자하는 가사가 섞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물가가 너무 비싸다거나, 힘든 취업 현실을 농담처럼 풀어내는 등의 방식입니다.
각설이 타령의 음악적 특징
각설이 타령은 장단과 리듬도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체로 흥겹고 빠른 장단을 사용해 사람들의 몸이 절로 움직이게 만들며, 반복되는 후렴과 추임새 덕분에 한 번만 들어도 금방 따라 부를 수 있습니다.
악기로는 북, 장구, 꽹과리 같은 타악기가 주로 쓰입니다. 이 악기들은 소리가 크고 분명해서, 시장이나 마당처럼 시끄러운 곳에서도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기 좋습니다. 악기 소리와 노랫소리가 섞이면서, 자연스럽게 관객이 박수와 함성을 보태게 되고, 공연장은 하나의 큰 놀이터가 됩니다.
구걸의 노래에서 삶을 위로하는 노래로
처음 각설이 타령은 먹고 살기 어려운 사람들이 동냥을 얻기 위해 부르던 노래라는 점에서, 분명히 ‘구걸의 노래’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노래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형편, 배고픔, 떠돌이 생활이라는 어두운 현실은 노래의 바탕에 남아 있지만, 그 위에 농담과 웃음, 관객과의 소통, 따뜻한 정이 더해지면서, 지금은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 주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듣는 사람은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하는 공감과 함께, 어려운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힘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각설이 타령은 우리 민요 가운데서도 특히 서민들의 삶과 감정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려한 궁중 음악이나 양반들의 노래와는 다르게, 장터 한가운데에서 누구나 함께 부르며 웃고 떠들 수 있는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각설이 타령을 만나는 방법
요즘에는 예전처럼 장터에 항상 품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축제나 공연, 전통문화 행사에서 각설이 타령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습니다. 또한 인터넷을 통해서도 여러 버전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튜브에서 ‘각설이 타령’이나 ‘품바 타령’을 검색하면 다양한 공연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영상들을 보다 보면, 같은 노래인데도 사람마다 말투, 표정, 가사, 동작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이 각설이 타령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틀에 박힌 노래가 아니라, 부르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함께 만들어 가는 살아 있는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각설이 타령은 단순한 민요를 넘어, 시대를 거치며 계속 새롭게 변하고, 또 새롭게 해석되고 있습니다. 옛사람들의 웃음과 눈물이 담긴 이 노래를 오늘 우리가 듣는다는 것은, 과거의 삶을 상상해 보고, 지금 우리의 삶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