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집에서 요리를 따라 만들었을 때, 레시피에 적힌 ‘미림’과 ‘맛술’이 도무지 구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둘 다 마트에서 비슷한 병에 담겨 있고, 설명에도 “잡내 제거, 풍미 업” 같은 말만 써 있어서 아무거나 집어 들고 썼습니다. 그런데 어떤 날은 양념이 너무 달고, 어떤 날은 고기 냄새가 조금 남아 있는 느낌이 들어서 왜 그런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재료 뒷면의 성분표를 꼼꼼히 읽어 보고, 일본식 미림과 우리나라 맛술을 따로 구입해 비교해 보면서 둘의 차이를 하나씩 익혀 갔습니다. 이제는 요리를 할 때 어떤 상황에 미림을 쓰고, 언제 맛술을 쓰면 좋은지 자연스럽게 손이 먼저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미림과 맛술은 모두 발효와 알코올을 이용한 조미료이지만, 만들어지는 방식과 맛, 향, 쓰임새가 생각보다 많이 다릅니다. 이름이 비슷해서 헷갈리기 쉬워서 그렇지, 하나로 퉁치기에는 아까운 재료들입니다.
미림과 맛술,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미림은 일본에서 시작된 전통 조미 술로, 원래는 그냥 마셔도 될 만큼 달고 향긋한 술이었습니다. 반면 맛술은 우리나라에서 “요리할 때 쓰기 좋게” 따로 만든, 보다 실용적인 조미 술에 가깝습니다. 두 재료의 차이를 하나씩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원료와 만드는 방식이 다릅니다. 미림, 특히 일본에서 말하는 전통적인 본미림은 찹쌀, 쌀누룩(코지), 증류주(소주 비슷한 술)를 섞어 오랫동안 발효시켜 만듭니다. 발효 과정에서 전분이 천천히 당분으로 바뀌기 때문에 설탕을 따로 넣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단맛이 강하게 살아납니다. 그래서 본미림의 단맛은 혀에 톡 튀는 느낌보다, 조용히 퍼지면서 깊게 남는 단맛에 가깝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마트에서 많이 접하는 맛술은 대개 소주나 청주 같은 주정에 여러 재료를 섞어서 만든 복합 조미액입니다. 쌀이나 곡물에서 얻은 알코올에 설탕이나 올리고당 같은 감미료, 생강·마늘·양파 추출물, 때로는 식초와 연육 효소 등을 더해 만듭니다. 쉽게 말해, “알코올 + 단맛 + 향신료 + 잡내 제거 기능”을 한 번에 넣어 둔 제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브랜드마다 맛의 차이가 꽤 크고, 어떤 것은 단맛이 강하고, 어떤 것은 거의 단맛이 느껴지지 않기도 합니다.
알코올 함량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전통적인 본미림은 알코올 도수가 보통 12~14% 정도로 꽤 높은 편입니다. 술의 맛을 그대로 가진 조미료라고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반면 시판 맛술은 보통 5~13% 정도로, 같은 “요리용 술”이라 해도 제품에 따라 편차가 큽니다. 특히 세금이나 법 규제를 피하기 위해 알코올을 의도적으로 낮춰 출시한 제품도 많습니다.
단맛을 비교해 보면, 본미림은 발효 과정에서 만들어진 자연 당분 덕분에 매우 달게 느껴집니다. 단맛이 강하지만 거칠지 않고, 음식에 들어가면 양념 전체에 부드러운 단맛과 감칠맛을 더해 줍니다. 반대로 맛술은 “단맛이 약하거나 보통”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어떤 제품은 설탕을 많이 넣어 꽤 달게 만들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잡내 제거와 향 조절 비중이 커서 “단맛을 내기 위한 재료”라기보다는 “요리의 뼈대를 정리해 주는 조연”에 가깝습니다.
이 차이들은 실제 요리에서 꽤 중요한 영향을 줍니다. 미림은 주로 윤기를 내고, 색을 고르게 해 주고, 깊은 단맛과 감칠맛을 보태는 데 강점이 있습니다. 반면 맛술은 고기와 생선의 냄새를 줄이고, 질긴 고기를 조금 더 부드럽게 하고, 국물이나 양념의 맛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데 강점이 있습니다.
미림, 일본식 조리의 숨은 주역
미림이라는 이름은 일본어 “味醂(みりん)”에서 왔습니다. 본래는 그 자체로도 달콤한 술이라서, 옛날에는 디저트처럼 조금씩 마시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식 조리법이 알려지면서 자연스럽게 들여와졌고, 지금은 마트에서 ‘미림’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제품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헷갈리기 쉬운 점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본미림(本みりん)”이라고 부르는 전통 미림과, 한국 마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미림 제품은 같은 이름을 쓰지만 내용이 꼭 같지는 않습니다. 본미림은 알코올 함량이 높은 진짜 술이고, 발효로 만든 자연 단맛이 특징입니다. 반면 한국에서 흔히 접하는 제품 가운데 상당수는 “미림풍 조미료”, 즉 미림 맛이 나도록 만든 조미료입니다. 이런 제품은 알코올을 낮추고 설탕이나 액상과당을 넣어 단맛을 보충한 경우가 많습니다. 주류세 문제와 제조 비용 때문인데, 제품 뒷면 성분표를 보면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미림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윤기와 단맛, 그리고 은은한 감칠맛입니다. 간장과 함께 끓여 조림을 만들면, 색이 탁해지지 않고 차분한 갈색을 내 주면서 표면에 고운 윤기를 입혀 줍니다. 데리야키 소스나 스키야키 국물이 반짝이는 이유도, 간장과 설탕에 미림이 함께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역할은 냄새를 줄이는 기능입니다. 알코올과 당분이 함께 작용하면서 생선이나 고기에서 나는 날선 냄새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훨씬 부드럽게 눌러 줍니다. 특히 조림이나 구이에서 마지막에 미림을 살짝 더해 주면, 남아 있던 냄새를 한 번 더 정리해 주면서 향에 깊이를 더해 줍니다.
미림을 쓸 때 기억해 두면 좋은 활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 데리야키, 스키야키, 일본식 조림처럼 단맛과 윤기가 중요한 요리에 넣어주면 좋습니다.
- 생선구이, 닭꼬치, 고기 조림 마무리 단계에 살짝 더해 표면에 윤기를 내고, 향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설탕 대신 일부를 미림으로 바꾸어 쓰면, 단맛이 너무 직선적으로 튀지 않고 조금 더 부드럽게 느껴집니다.
- 초밥용 식초를 만들 때, 식초와 설탕 사이를 이어 주는 다리 역할을 해서 맛을 둥글게 잡아 줍니다.
주의할 점도 있습니다. 본미림처럼 알코올이 높은 제품을 많이 넣으면, 조리 중에 알코올이 날아가기 전까지 술 냄새가 꽤 강하게 올라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림은 대개 조림의 초반이나 중간에 넣어 함께 끓여 주고, 마무리에 들어가는 양은 살짝만 조절하는 편이 좋습니다. 또, 미림 자체가 이미 단맛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설탕이나 물엿과 함께 쓸 때는 양을 줄여야 합니다.
맛술, 한국 요리에 잘 맞는 실용적인 조미 술
맛술이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맛을 내는 술”에서 왔습니다. 어떤 특정한 전통 술 이름이라기보다는, 우리 입맛과 요리에 맞게 조절해 둔 조미용 술을 통틀어 부르는 말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마트에서 파는 맛술 제품들을 보면, 회사마다 성분 구성이 조금씩 다르고, 향과 단맛도 제각각입니다.
대부분의 맛술은 기본적으로 알코올에 각종 재료를 첨가해 만듭니다. 보통 소주나 청주와 비슷한 주정을 베이스로 하고, 설탕·올리고당 같은 감미료, 생강·마늘·양파·후추 등의 향신료 추출물, 때로는 효소를 넣어 고기를 부드럽게 하는 연육 기능까지 더합니다. 그래서 맛술은 알코올 그 자체의 맛보다, “고기나 생선과 만나면 좋은 역할을 하도록 설계된 액체 조미료”라는 표현이 잘 어울립니다.
맛술이 특히 빛을 발하는 부분은 잡내 제거입니다. 돼지고기, 닭고기, 생선처럼 특유의 냄새가 강한 재료를 다룰 때, 양념이나 국물에 맛술을 한두 숟가락 섞어 넣으면 확실히 냄새가 순해집니다. 잡채에 넣는 소고기, 불고기용 고기, 갈비찜, 생선조림, 해물탕, 김치찌개, 된장찌개 등 냄새가 걱정되는 요리 전반에서 두루 활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일부 맛술에는 고기를 부드럽게 하는 성분이 들어 있어, 질긴 부위를 재울 때 특히 도움이 됩니다. 양념장에 맛술을 섞어 고기를 20~30분 정도만 재워 두어도, 익힌 뒤의 식감이 조금 더 부드럽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이것만으로 아주 질긴 고기가 완전히 연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당히 도와주는 역할은 충분히 합니다.
맛술은 국물 요리나 볶음 요리에도 잘 어울립니다. 감칠맛이 아주 강렬하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국물이나 소스의 맛을 한 번 정리해 주는 느낌이 있습니다. 간장, 된장, 고추장처럼 향이 강한 재료와 함께 쓸 때도 튀지 않고 자연스럽게 섞여 듭니다. 특히, 이미 생강이나 마늘 추출물이 들어 있는 맛술을 쓰면, 향신료를 따로 준비하기 번거로운 날에 꽤 편리합니다.
- 돼지고기, 닭고기, 생선 비린내가 걱정될 때 양념이나 국물에 숟가락으로 한두 번 정도 넣어 줍니다.
- 질긴 고기를 재울 때 간장·다진 마늘·설탕과 함께 섞어 사용하면 식감이 완화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 김치찌개, 된장찌개, 각종 볶음 요리에 소량 더하면 뒷맛이 조금 더 깔끔하게 정리됩니다.
둘 중에 하나만 써야 할 때, 어떻게 선택할까
사실 집에서 요리를 하다 보면, 미림과 맛술을 둘 다 사 두고 쓰기 애매할 때가 많습니다. 공간도 한정되어 있고, 자주 쓰지 않으면 남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어떤 요리를 주로 하는지에 따라 한 가지를 우선 선택해도 괜찮습니다.
일본식 조림, 데리야키, 스키야키, 일본식 덮밥 소스처럼 윤기와 단맛이 중요한 요리를 자주 한다면, 가능한 한 전통 본미림에 가까운 미림을 한 병 준비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대신 고기나 생선 냄새를 잡는 역할은 소주, 청주, 생강, 마늘 등 다른 재료로 보충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불고기, 갈비찜, 각종 찌개와 볶음처럼 우리나라 집밥 메뉴가 대부분이라면 맛술 하나만 있어도 충분히 많은 역할을 합니다. 단맛이 모자라면 설탕이나 올리고당으로 채우면 되고, 윤기가 필요할 때는 간장과 설탕, 기름을 조절해 주면 어느 정도 비슷한 느낌을 낼 수 있습니다.
서로를 대신 써야 할 때의 요령
가끔 레시피에 미림이 적혀 있는데 집에는 맛술만 있거나, 반대로 맛술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미림만 있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몇 가지 원칙을 알고 있으면 실패를 줄일 수 있습니다.
미림 대신 맛술을 사용할 때는, 단맛과 윤기가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조절해 주면 됩니다. 보통은 설탕이나 물엿을 약간 더 넣어서 단맛을 보충하고, 필요하다면 국물이나 양념을 조금 더 졸여 농도를 올려 윤기를 내면 비슷한 느낌에 가까워집니다. 다만 맛술에 이미 생강·마늘 향이 들어 있는 제품이라면, 원래 레시피보다 향이 조금 강해질 수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두는 것이 좋습니다.
반대로 맛술 대신 미림을 써야 할 때는, 미림의 단맛이 더 강하다는 점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같은 양을 넣으면 요리가 훨씬 더 달아질 수 있으므로, 레시피에 있는 설탕이나 다른 단맛 재료의 양을 줄이거나, 미림 자체의 양을 조금 덜 넣는 식으로 조절해야 합니다. 또, 미림은 냄새 제거에는 도움을 주지만, 맛술에 들어 있는 향신료 추출물만큼 강하게 냄새를 가리지는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생강이나 마늘을 별도로 조금 더 사용하는 편이 안심할 수 있습니다.
만약 알코올 향이 부담스럽다면, 미림이나 맛술을 넣은 뒤 충분히 끓여 알코올을 날려 주는 것이 좋습니다. 불을 세게만 올리는 것보다, 뚜껑을 열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도록 은근히 끓여 주면 술 냄새는 빠지고 맛만 남습니다.
미림과 맛술을 대할 때 기억해 두면 좋은 점
두 재료는 모두 “술”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완성된 요리에 알코올이 그대로 남지 않도록 조리법을 잘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끓이거나 볶는 과정에서 상당량이 날아가지만, 넣자마자 불을 끄면 술 냄새가 남을 수 있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먹는 요리라면 충분히 가열해 주는 편이 더 안심이 됩니다.
또한, 제품마다 맛과 성분이 다르기 때문에 한 번에 많이 붓기보다 작은 숟가락으로 조금씩 넣어 보고, 향과 맛을 확인하면서 조절하는 습관을 들이면 좋습니다. 처음에는 헷갈리더라도, 여러 번 써보면 “이 브랜드의 맛술은 생각보다 많이 달구나”, “이 미림은 윤기는 좋은데 알코올 향이 세니까 조금만 넣어야겠다” 같은 감각이 쌓입니다.
미림과 맛술은 이름이 비슷하고 쓰임새도 겹치는 부분이 많지만, 알고 보면 각자 잘하는 역할이 다릅니다. 미림은 깊고 은은한 단맛과 감칠맛, 윤기를 담당하고, 맛술은 냄새 제거와 고기 부드러움, 전체적인 맛 정리를 맡습니다. 상황에 맞게 적절히 골라 쓰거나, 한 가지만 가지고 있다면 다른 재료와 함께 조합해 역할을 나누어 주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요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